이슬람 사람들의 생생한 삶과 함께 다가오는 우리가 몰랐던 이슬람 인도네시아의 사회학자이자 칼럼니스트인 율리아 수리야쿠수마의 《천 가지 얼굴의 이슬람, 그리고 나의 이슬람》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슬림이 사는 인도네시아를 무대로 사회 지배 권력인 종교 이슬람과 소수 엘리트의 본 모습, 무슬림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 우리가 몰랐던 이슬람 사회의 모습을 생생하게 포착한다. 그 모습은 때로 우리의 선입견과 일치하지만 전혀 새로운, 뜻밖의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세상의 정의를 올바로 세우겠다며 폭탄 테러로 202명을 살해한 이슬람 무장조직 지도자가 있는가 하면 이슬람이 모태 신앙이지만 히잡(질밥)을 쓰는 것이 신과 우리를 가깝게 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되냐고 반문하는 여성 무슬림이 있다. 하루 다섯 차례의 기도와 《꾸란》 읽기에 충실하지만 첫 아내 몰래 두 번째 아내를 얻는 ‘평범한’ 무슬림 가장과 관용과 평화의 이슬람 교리에 끌려 개종하고 그 정신을 직접 실천하는 비정부 무슬림 조직을 만든 사람도 있다. 이들은 모두 이슬람의 각기 다른 얼굴들이다.
특히, 저자는 중산층의 여성 지식인과 가부장 사회의 여성, 이슬람을 모태 신앙으로 갖고 있으면서 서구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는 여러 겹의 정체성 덕에 이슬람 안에서 외부를 향해, 또 외부의 시선으로 이슬람 내부의 문제를 해석하며 균형 있는 목소리를 낸다. 저자는 이슬람에 대한 서구의 맹목적인 비난, 이슬람을 명분 삼아 국민을 억압하는 국가 권력, 그리고 자살 폭탄 테러를 저지르는 이슬람근본주의자들은 모두 이슬람을 폭력의 종교로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결국 같다고 말한다. 그들은 무지에서 비롯된 두려움을 폭력으로 잊으려 하고 자신의 신념만이 유일한 진리라고 외치며 타인을 핍박하는데, 그 과정에서 괴로움을 겪는 것은 여성이나 빈민, 소수자 같은 사회적 약자다. 저자는 말한다.《꾸란》의 이름으로 여성과 이교도, 성적 소수자를 억압하고, 불합리한 정치 관행을 용인하는 행위는 《꾸란》의 본뜻과 어긋난다고 말이다.
|
|
무슬림이 라마단 한 달을 굶는 까닭
‘전투’의 의미를 지닌 사움은 알라께 순종하고 은총에 감사함을 표시하고자 내 안에 있는 욕망과 싸우는 정신적 훈련이자 실천이다. 아울러 가난하고 소외당하는 이들과 고통을 함께함으로써 무슬림의 연대의식을 강화하는 사회적 훈련이기도 하다. p. 35
(금식월 라마단이 끝났음을 축하하고 이슬람력의 새해를 맞는) 르바란 축제일이 되면 여유 있는 집들은 요리를 넘치도록 차려 놓고 손님, 친구, 친척들을 맞는다. (중략) 식사를 대접하는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굶은 너에게 고칼로리, 고지방, 고당분으로 보답하겠노라.” 여기 어디에 영적인 수련과 성장이 있단 말인가? 낮 동안 끼니를 거르는 대신 새벽에 잘 차린 음식을 먹고 저녁에 화려한 만찬을 즐기는 것은 탐욕과 지나침의 다른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중략) 내가 보기에 요즘 들어 르바란은 서양의 크리스마스처럼 점점 더 상업화되고 있다. 신앙이 아니라 종교에 따르는 의례 그 자체가 르바란의 목적처럼 보일 때도 많다. (중략) 르바란과 관련된 좋은 전통들, 예를 들면 이슬람의 5대 의무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희사금 자캇이 과연 순수한지도 한번 짚어보자. 요즘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사업 상대에게 ‘르바란 꾸러미’라며 선물 보내기가 관행이 되고 있다. p. 32-33
다름은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하려는 신의 축복이다
우리가 힘들게 일궈낸 민주화가 더 큰 분열과 종교, 민족 분쟁으로 귀결된 현실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슬픈 일이다. 우리는 서로를 알기 위해 애쓰는 대신, 신이 주신 다름을 이유 삼아 증오와 분열을 키우고 있다. 종교는 분열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기 위한 바탕이 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p. 97
무엇보다 (성적 소수자들과 함께한 ‘젠더, 섹슈얼리티와 국가’라는) 강좌에 참여하면서 ‘다름’을 관용으로 받아들여야 함은 물론 신이 주신 선물로 여겨 축복해야 한다는 《꾸란》의 가르침을 새삼 돌이켜보게 되었다. 우리가 이상적으로는 ‘서로 다름 가운데 하나 됨’을 이루어야 한다고 소리 높여왔지만 실제로 오랜 시간 동안 점점 더 분열되어왔다는 사실, 특히 도덕과 종교를 앞세우면서 더욱 편협해져왔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꾸란》은 이렇게 말하면서 사람들의 언어와 피부색이 다양하다는 것을 신이 내려준 경이로움으로 찬양하고 있다.
천지와 갖가지 언어와 피부의 빛깔을 창조한 것은 알라의 징표다. 진실로 그 가운데는 지식 있는 자에의 징표가 있다. - 《꾸란》 30장 22절
심지어 이렇게도 말한다.
아, 믿는 자들이여, 우리는 너희를 남녀로 나누어 창조하였다. 너희들을 부족과 종족으로 나누었는데, 이것은 너희들 서로가 알도록 하기 위함이다. 너희들 중의 가장 존귀한 자는 보다 알라를 공경하는 자이니라. 알라께서는 전지하시고 통찰하신 분이다. - 《꾸란》49장 13절
(중략) 우리는 서로를 알기 위해 애쓰는 대신, 신이 주신 다름을 이유 삼아 증오와 분열을 키우고 있다. 종교를 분열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기 위한 바탕이 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p. 96-97
경건한(?) 남자들은 섹시한 여성이 무섭다
- 다른 모든 사회적 계약과 마찬가지로, 성별에 마땅한 일이 무엇인지도 협정처럼 굳어져 있다. 그 가운데서 우리를 가장 먼저 규정짓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성별, 섹스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성별에 마땅한 일을 정하는 것은 생물학적 근거라기보다 권력을 쥔 사람들과 정치적 역학관계다. p. 86
인도네시아에는 지금도 여성들을 물리적으로 남성들과 격리시키는 풍습이 남아 있고 극단적 이슬람주의자들은 가혹한 이슬람 지역규칙 프르다를 적용해 여성의 활동을 제한한다. 여성들은 이러한 억압 밑에서 숨 죽인 채 통제, 지배, 학대를 통해 착취당해 왔다. 남성들은, 성인 여성뿐 아니라 어린 여자 아이들까지 강간, 근친상간, 성희롱, 구타, 성매매 대상을 삼아 성적 쾌락과 경제적 이익을 챙겨왔다. 세계의 거의 모든 문화를 지배하는 가부장적 종교에는 이런 위선이 널리 퍼져 있다. (중략) 도덕성은 사람의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지, 신앙 깊고 정숙한 옷차림을 한 다른 사람으로부터 오지 않는다. 우리는 성적 유혹뿐 아니라 다양한 유혹이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간다. 유혹을 이기는 방법은 스스로 도덕성을 단련하는 길뿐이다. 아부 바카르의 주장은 그와 그 추종자들이 지저분한 마음을 지녔고, 신앙심이 약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쩌면 그래서 총으로 다른 이들을 개종시키려 드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의 신앙은 진실하지 않다. p. 80-81
인도네시아는 민주주의 사회이니 당연히 소수집단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게다. 하지만 종교적, 민족적 소수집단뿐 아니라 성적 소수집단도 권리를 똑같이 보장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는 이들이 많다. 인구의 2퍼센트를 차지하는 중국계 소수민족의 권리가 마땅히 인정되어야 하듯이, 그보다 많은 동성애자의 권리에 눈 감아서는 안 된다. 다수파가 소수파를 어떻게 대접하는가는 그 사회가 정의로운지를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p. 283
_지은이 : 율리아 수리야쿠수마 (Julia Suryakusuma)
인도네시아의 사회학자. 여성학자. 저널리스트. 사회평론가. 인도네시아대학(University of Indonesia)에서 심리학을, 런던 시티대학(City University)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헤이그 사회학연구원(Institute of Social Studies)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인도네시아에서 태어나 외교관인 부모를 따라 여러 나라에서 살며 공부했지만 평생 모태 신앙 무슬림으로 살아왔다. 본격적인 작가로 활약한 1979년부터 2003년까지 발표했던 글에서 가려 뽑은 《성, 권력 그리고 국가(Sex, Power and Nation: An Anthology of Writing 1979-2003)》를 펴냈다. 이밖에 《인도네시아 정당 연감(Almanac of Indonesian Political Parties)》(1999), 《인도네시아 의회 가이드(Indonesian Parliament Guide)》(2001) 등을 편찬했다. 율리아는 스스로 여성학자, 사회과학자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운동가로 오해하곤 한다. 지금은 인도네시아 유력 일간지 <자카르타포스트>, 인도네시아 언론자유투쟁의 상징인 주간 시사지 <템포> 등에 글을 쓰면서 세계 곳곳의 초청을 받아 종교, 제도, 관습, 법이 사회적 약자들을 어떻게 억압하고 차별하는 권력이 되는지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_옮긴이 : 구정은
서울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미술사를 전공했고, 문화일보를 거쳐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로 일하고 있다. 2002년 사담 후세인 체제하의 이라크를 취재했고, 2003년 이라크 전쟁을 현지 취재했다. 아프리카, 토고, 가나, 시에라리온, 남아프리카공화국, 케냐 그리고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에서 난민 문제와 기후변화 등을 취재했다. 중동,아프리카 등 흔히 서방의 변두리 정도로 취급해온 지역들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글로벌한 관점에서 이슈를 보는 시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특히 자본,노동의 이동으로 빚어지는 세계적인 흐름과 난민,인권,환경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